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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에서 전업주부로 살아남기

멕시코 그 사람들의 현실 막장드라마

 

 

그림을 사랑하던 프리다라는 소녀는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확인하고 싶어 1928년 당시 멕시코의 저명한 화가였던 디에고를 찾아갔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고, 이후 연인 관계로 발전하여 1929년에 결혼을 하게 되는데,

 

 

로맨틱한 만남과 달리,

두사람의 결혼생활은 결혼식날에 온 하객들의 디에고의 여성편력에 대한 수군거림을 시작으로 불길한미래를 예측할수 있었다. 

 

이를 모르지 않았던 프리다는 자신과는 다를것이라고 생각하며 결혼식을 강행했고, 그 자신감은 머지않아 꺽이기 시작했다. 

 

 

 

신혼때부터 디에고는 많은 여자들과 바람을 폈지만 프리다는 디에고에 대한 사랑때문에 따꼬 싸대기도 때리지 못한..떠나지 못했지만

어느날 프리다는 충격에 빠지고 만다. 

 

바로 새로운 바람의 상대가 자신의 친 여동생 크리스티나라는 사실, 프리다는 따져물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참담했다.

 

 

 

여느 막장드라마의 남자 주인공과 같이 디에고는 뻔뻔했다.

 

복수심에 불타오른 프리다는 그와 같이, 아니 그에게 자신이 받은 충격보다 더 큰 충격을 주기 위해

 

점을 그리기 시작하는데

 

 

남자, 여자 성별을 가리지 않고 레프 트로츠키(러시아 혁명가), 조지아 오키프(유명 여성 화가),

멕시코 유명 가수들과 불꽃같은 연애를 하게되는데,

 

"프리다 이건 아니잖아 이제 그만 멈춰!"

이에 당황한 디에고는 내로남불을 시전하며 프리다를 말리지만

 

"나도 너처럼 자유롭게 살거야! 내버려둬!"

결국 화해하지 못한 두사람은 1939년 이혼하게된다.

 

 

하지만 이런 개싸움을 하고도 서로를 아직 잊지 못한 두사람은 불과 1년만에 재결합을 하게 되는데,

두사람에게 다시 쥐어진 기회는 프리다의 건강악화로 다시 난간에 부딪히고 만다.

 

사실 두사람이 만나기 전인 18살에 전차와 부딪혀 몸의 상당부분의 뼈가 부셔졌던 사고를 당한 프리다의 몸은 시간이 지나며 더욱 악화되었었고 재결합을 한지 3년만에 1954년 4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나는 떠나는것이 기쁘다.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다."

 

 

짧은 프리다의 삶은 전차사고로, 그 휴유증으로, 남편의 외도와 그에 대한 애증으로 가득 차있었으며, 프리다의 그림에서 느낄수있듯이, 

그녀의 삶은 고통과 자신과 디에고에 대한 연민과 분노 사랑이었다. 

 

수없는 외도를 저질렀지만 결국 프리다를 사랑한 이 모질이 남자주인공은 결국 프리다가 자신을 떠난지 3년도 되지않아 프리다 곁으로 가게된다. 

 

먼 훗날 이 둘의 초상화는 한 종이에 앞면과 뒷면에 인쇄되어 널리 널리 사용되는데.... (갑자기 호러)

사후에도 이렇게 두사람은 가깝지만 서로 다른곳을 보며 함께 머무르게 된다. 

 

 

바로 이 이야기에서 프리다와 디에고는 지금까지도 멕시코에서 가장 유명한 20세기 예술가이며,

 

 

프리다 칼로(1907년 7월 6일 1954년 7월 13일) 는 멕시코를 대표하는 화가로, 그녀의 작품은 주로 자화상을 통해 자신의 삶과 고통, 정체성을 표현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녀는 총 143점의 작품을 남겼으며, 그 중 55점이 자화상이다.

 

 

디에고 리베라는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1886년 12월 8일 ~ 1957년 11월 24일)는 멕시코의 대표적인 화가이자 벽화가로, 멕시코 벽화 운동의 선구자로 멕시코의 역사, 혁명, 민중의 삶을 주제로 한 대형 벽화를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했다. 

유럽 유학중에는 피카소를 만나 입체파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서로를 견제하고 시기하는 관계이기도 했으며, 우정을 나누었다. 

 

 

 

최근까지 멕시코의 가장 큰 화폐였던 500페소에 디에고 리베라는 앞면, 프리다칼로는 뒷면에 부부의 초상화가 담겨있다.

이 처럼 이들은 그림에 대한 실력, 예술에 대한 재능뿐만 아니라 그 시절 이게 가능한가 싶은 불륜과 동성애 이야기 격렬하고도 파란만장한 사랑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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